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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의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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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이 2기 선교사​, 원두리교회 간증

어릴 적 처음 선교사를 꿈꾸게 된 날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아주 화창한 안식일에 멋진 천명 선교사 언니 오빠들이 안식일 학교 순서를 썼습니다. 저는 그날 크게 감명을 받아서 친했던 교회 언니와 성인이 되면 함께 선교사에 지원하기로 약속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선교사가 되게 해주세요!”

 

세월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스무 살이 되었습니다. 이전에 드렸던 기도는 까맣게 잊은 채 열심히 적성에 안 맞는 학교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친 언니의 카톡 프로필 사진에 컴파스 선교사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습니다. 저는 정말 순수하게 “이게 뭐야?”라고 물었는데 그걸 관심으로 받아들인 언니는 재빠르게 전도사님을 연결시켜주었습니다. 어쩌다 보니 지성배 (그 당시 컴파스 담당) 목사님과 통화를 하게 되었고, 또 정신을 차려보니 한 학기밖에 안 다닌 대학을 휴학하고 선교사 지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이미 선교사 훈련이 시작되어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시점이었고, 모집된 선교사가 9명이라 마지막 한 명을 두고 다 같이 기도를 하던 중이었다고 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죠?

지원한다고 했을 때, 아버지께서는 20대에게 1년의 시간이 생각보다 크다며 반대하셨습니다. 하지만 저는 심장이 너무 뛰고 뜨거워서 꼭 가야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학교에 더 다닐 용기가 없었고 솔직히 별로 재미도 없었습니다! 돌아오면 국어교육 복수 전공을 하겠다고 아버지와 약속하고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그날 마음이 뜨거웠던 것은 지 목사님과 통화를 할 때에 사슴의 동산에 있던 동기 선교사들의 뜨거운 예배에서의 성령의 불씨가 제 마음에 옮겨붙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현이야 여기 너~~무 좋다”라는 성령의 은혜에 흠뻑 젖은 목사님의 목소리에 ‘아 나도 저 좋은 곳에 끼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든 저는 단번에 1년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실 만족스럽지 못한 대학 생활이었기에 도피처가 필요했고 좋은 타이밍에 저는 하나님께로 피했습니다. 그렇게 컴파스 2기를 만났고 저희는 함께 성장했습니다. 물론 선교사 훈련이 대학생활보다 쉬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오직 영혼 구원을 바라보고 함께 걷는 동역자들이 있었기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6개월 국내 사역 기간 동안 수원새하늘 교회로 파송됐습니다. 그곳 학생반은 중1부터 고3까지 10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고등학교 진학을 앞둔 쌍둥이 자매를 파트너와 함께 맡아 금요일마다 제자훈련을 했습니다.

 

 국내 사역을 마치고 파송되었던 교회에서 컴파스 선교사들이 다 같이 전도회를 하게 되었고 9명의 청소년들이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쌍둥이들의 친언니가 당일까지 침례를 고민하다가 자격이 없어서 못 받겠다고 했고 결국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파트너와 저를 통해 이 친구를 달래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순간 저희를 인도하셔서 상황을 대처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그 후 선교사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부푼 꿈을 안고 복학했습니다. ‘이 대학(장로교 미션 학교)을 다 뒤집어 놓으리라! 뜨거운 성령운동을 일으키리라!’라는 마음으로 돌아왔지만 현실은 냉담했습니다. 캠퍼스 내 말씀묵상 소그룹을 계획했는데 처음에는 거절당했습니다. 그래도 열심히 기도하며 준비했고 학기 중 전주지역에 2개의 캠퍼스 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제 인생을 돌아보면 하나님의 손길이 닿지 않은 순간이 단 한순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는 절대로 우연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하심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 16:9)

 

여러분의 마음에도 어릴 적 제가 처음 멋모르고 선교사를 결심하던 그날의 순수한 약속이 스며들기를 진심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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